[반디와 나무/육아일기] - 2004. 1. 20. 22:24  by 사가아빠


예정일 1월 4일
출산일 1월 3일 02시 31분
체중 3.1Kg
신장 49Cm

나는 반디가 2003년안에 태어나길 바랬지만
반디는 12월을 넘기고야 말았습니다.
2004년 1월 1일 아침 드디어 이슬이 비쳤어요.
이슬이 보이면 출산일이 가깝다고 들어온 터라
곧 반디를 만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반디의 작은 고모가
우리집에 오셔서 초조함을 조금 지울 수 있었지요.
다음날 이슬은 많아지고 간헐적인 진통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진통이라고 부르기엔 일정한 주기가 없이 오전을 보냈습니다.
오후 1시쯤부터 진통 간격을 체크하기 시작했는데 5~6분 간격이더군요.
시간상으로 볼때는 병원에 가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도가 약하더군요.
하지만 아빠는 병원에 가자고 초조해하기 시작했고
서둘러 샤워를 하고 3시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진을 해본 의사선생님이 아직 강도가 약하다고
저녁때나 새벽에 나올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3주전부터 자궁이 열리기 시작해서 긴장하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만날 날이 된것이었어요.
입원을 하든지 집에 다녀오라고 하시길래 우린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오니 진통이 강해지더군요.
하지만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진통 와중에도 밥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수속을 하고 내진을 받으니 7시쯤.
이미 60%가 진행됐다고 그날 당직 간호사들이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미리 터트린 축포였지요.
그때부터는 진행이 느려서 '역시 초산이구나' 소리를 들으며 진통을 해야했습니다.
12시가 넘어도 70-80%였고 미리 터트린 양수는 다 새어나와서
피만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
내진을 하러 1시간에 한번씩 들어오시는 의사선생님이 나갈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언제나 분만실로 가자고 할지 눈앞이 캄캄했어요.
간호사들이 계속 나중에 힘을 잘줘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더군요.
당연히 애 날때 힘 잘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엔 다른뜻이
숨어있었다는걸 정작 힘주기 할때에 알게 됐지요.
진통이 4-5분 간격으로 올때는 그런대로 참을만 했습니다. 1분 정도만 잘 참으면
쉬는시간(?)이 생기니까요. 하지만 밤 10시가 넘어가고 진통의 간격이 거의 사라지니
정말 내몸을 어찌 할 수가 없더군요.
오매불망 시계만 바라보게 되고 아빠는 옆에서 소리라도 지르라고 하지만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어요.
입을 열면 수술해 달라고 애원할지 욕을 마구 할지 나 자신도 알수가 없었거든요.
둘이 여행한 곳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진통을 줄여보려고 했지만
아무 도움이 안되더군요. 옆에서 아빠가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내 코가 석자라 위로해 줄 여력이 없더라구요.
오히려 간호사가 어떠냐고 물으면 죽고싶다고 대답한 거 같아요.
드디어 새벽 2시쯤 간호사 둘이 들어와서 힘주기 연습을 시키더군요.
그리고 힘 잘 주라는 말도 알게 됐지요.
반디는 엄마 등쪽이 아니라 엄마 배쪽을 바라보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궁이 열려도 애가 내려오는 속도가 느리고 산도에 끼어있었지요.


한 간호사는 배옆에 서서 아래로 내리고 한 간호사는 아래에서 후벼파고(?)
나는 구령에 맞춰서 힘을 주었어요. 심호흡을 두번하고 숨을 들이마신 뒤
배에 힘을 주었지요. 밀어내기란 평소에 대변보는 것과 비슷한데
평소 하던건데 막상 애 낳을땐 생각보다 어렵더라구요.
서너번 연습을 하고 나서 애 머리가 보이자 분만실로 가자고 하더군요.
드디어 그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의 끝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분만대에 오르고 나니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시고
파란 옷을 입은 아빠가 들어왔어요.
정말 있는 힘껏 힘을 주었어요. 더 이상 힘이 없어서 힘을 빼려고 하니
애 머리 다 나왔다고 더 힘주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들리더군요.
'엄마 힘 빼면 안돼. 애 나와요.'
없는 힘도 짜내서 더 힘을 주었어요.
그리고 뭔가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바로 배에 원가가 올려졌어요.
살짝 내려다 보니 뻘건 동그라미가...
그리고 부산하게 탯줄 자를 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보였어요.
애기 얼굴이 궁금했는데 애기를 처치하러 나갈때 살짝 간호사가 보여주더군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봤는지 기억조차 안나네요.
그런데 '너 못생겼구나'라고 말한 것은 기억나요 ㅡ.ㅡ;;;
진통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딸애에게 할 첫말이 아니었는데 에고고..
태반이 나온뒤 마지막 내진과 회음부 봉합이 있었지요.
대체 회음부는 언제 절개했는지 난 미처 느끼지도 못했네요.
그때서야 드디어 모든게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물론 착각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됐어요.
내가 드디어 출산을 해냈구나. 중간에 보다못한 아빠가 간호사에게 무통을
부탁했는데 진통할만큼 해서 낳으라는 소리만 듣고
그땐 그리 서운하더니 해내고 나니 뿌듯하긴 하더군요.
그때 의사선생님 말씀이 들리더군요.
살도 찌고 엄살도 많아 보여서 고생할 줄 알았는데
진통도 잘 참고 힘주기도 잘한다나요?
아니 그게 잘 참는 걸로 보였나 보죠. 소릴 지를 용기조차 없는 것이
보기에 따라선 그렇게도 보이나 봅니다.
뭐 힘주기는 그럭저럭 잘한것도 같지만요.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올라가는데 진통하는 다른 산모의 신음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산모의 남편의 시선에 부러움이 가득차 보이는건 잘못 본게 아니었겠지요.
영양제를 맞는 동안 아기를 보라면서 옆에 반디를 뉘어줬어요.
그렇게 수없이 감격적인 장면을 상상했지만 막상 옆에 누워있는 반디를 보면서
아무런 실감도 나지 않았어요. 옆에 아기는 자고있는데.. 내 아기라는 느낌은 아직 없고,
출산 후라 그런지 너무나 졸려서 눈이 떠지질 않더군요.
조는 사이에 아기는 가버렸고 아침에 다시 내 곁으로 온 반디는
아주 아주 예쁜 아기였어요.
10달 동안 꿈꾸던 나의 딸
'반디야 드디어 왔구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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